처서(處暑)는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의 사이에 있다. 양력으로 8월 22일 내지 8월 23일경으로, 점성술에서는 처녀자리가 시작되는 날이다. 한자론 멈출 '처(處)'에 더울 '서(暑)'다.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다.
이름과는 반대로 더위의 절정인 시기 입추와는 달리, 처서는 확실히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는 때다. 사람의 체감상으로는 이 때를 기점으로 가을을 느끼기에 진정한 가을의 시작은 입추가 아닌 처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처서가 지나면 뜨거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누렇게 되고, 더 자라지 않는 시기가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대서랑 입추 전후로 더위의 절정을 겪은 후 처서 즈음해서 급격하게 최저 기온이 내려가며 폭염 및 열대야가 사라지고, 푹푹 찌는 더위의 주 원흉인 습도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여름의 상징인 매미 소리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며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실제로 길바닥이나 옥상에 가면 생을 마감하는 매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름 내내 계속되던 우중충한 먹구름이 걷히면서 맑은 날씨가 다시 찾아온다. "처서가 지나면 참외맛이 없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당연하지만 냉방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 전력 소비량도 이때부터 급격하게 내려간다. 그리고 여름의 상징인 해수욕장도 대부분 처서 하루이틀 전에 폐장한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시기에는 눈두렁의 풀을 깎아베고 산소에서 벌초를 하며 이날은 대추가 맺힌다. 또 처서에는 호미씻기도 끝나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처서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시기가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그만큼 치명타로 작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시기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다만 연도마다 간혹 예외가 있어서, 폭염이 심하거나 뒤늦게 찾아온 경우는 처서 시기에도 입추 못지 않게 매우 무더울 수도 있고, 가을 장마가 일찍 오거나 여름 장마가 오래 갈 경우 처서가 되기 전부터 가을 느낌이 날 때도 있다.
가을에 처서가 지난 뒤부터 귀신같이 더위가 가시고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일컬어 마법, 마술을 뜻하는 영단어 ‘Magic’과 합성하여 일명 '처서 매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가 역대급 폭염으로 허덕이던 2018년 처서 즈음에 태풍 솔릭이 한반도로 올라와 열돔을 박살내면서 처서매직을 선사했다.
하지만, 2024년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는데 처서 하루 전날 한반도에 정체된 고온다습한 대기에 태풍 종다리가 포섭 흡수됨으로서 오히려 다습한 날씨가 강화되고 말았다. 다만 늦은 오후부터는 전국적으로 평균 기온이 내려가고 비교적 선선한 공기가 유입되는 등 예전만큼 큰 더위는 가라앉았다는 평이 많다. 9월 초에도 최고기온 33도 정도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저기온은 이전에 비해 내려가 대부분 지역은 열대야가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무려 백로가 지난 9월 10일 기준으로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등 유례없는 폭염이 지속되며 밤에도 높은 습도와 함께 열대야가 다시 찾아오며 처서매직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으며 추석 연휴 내내 폭염이 지속되어, 가장 더운 추석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고려사(高麗史)』 권50「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歷) 상(上)에는 “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3분하는데, 첫 5일 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라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한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이 무렵에 했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한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무렵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시기여서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인데,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농사의 풍흉에 대한 농부의 관심은 크기 때문에 처서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이에 따른 농점(農占)도 다양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고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려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이다. 이는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체득적(體得的)인 삶의 지혜가 반영된 말들이다.
이와 같은 관념은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한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한다.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를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의 혼수장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처서비를 몹시 꺼리고 이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