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 朴榮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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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3년 10월 28일 (70세)
충청남도 대전시
(現 대전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密陽 朴氏)
신체
175cm, 270mm, B형
가족
아내(1978년생), 딸
전 부인 김수륜[A], 최경숙[A], 아들
학력
대전중앙중학교 (졸업)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학교 (연극과 / 전문학사)
종교
개신교(예장합동)
특기
성악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3포병여단 병장 만기전역
데뷔
1985년 영화 '별리'
1986년 MBC 특채 탤런트

 



대한민국의 배우로, 찌질하고 코믹한 개그 캐릭터부터 중후한 사극 연기까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한다. 1989년에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며, 2016년에는 성악가들과 무대를 가진 적도 있을 만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1953년 충청남도 대전시(현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등학생 때 수학여행도 불참했을 만큼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15살에 신문을 돌리다가 불독에게 물린 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학교 담임의 “넌 훌륭해질 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란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막연히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전혀 그 쪽으로 인연이 없었고, 형편이 어려워 충남기계공고를 가야 했다. 기름밥 먹는 생활과 맞지 않았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국은 서울예전에 1972학번으로 합격했다. 면접관이 바로 연출가 오태석이었다.

1976년 포병으로 입대했고, 제대 후인 1980년 본격적으로 대학로에서 극단 생활을 하게 된다. <공간사랑>이란 곳이었는데, 대학 은사 오태석의 작품인 <1980년 5월>로 연기를 시작했다. 곧 오태석이 <극단 목화>를 창단하면서 창단 멤버에 이름을 올린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소품을 정리하는 역할로 시작해 연극 배우로 총 7년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를 회상한 그는 회식 자리가 있으면 오태석의 가방을 맡아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겸사겸사 그 날 연기에 대해서나 연기 철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화여대 정문 옆 철길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고... 그 때 룸메이트들이 현재 <극단 76단>을 이끌고 있는 기국서&기주봉 형제였다.

그러나 극단 생활이 흔히 그러듯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렸고, 심지어 도중에 폐결핵까지 걸렸다. 29세(1981년) 9월 그가 묘청 역을 맡았을 때 체중이 42kg까지 줄고 무대에서 기절도 했다고 한다. 잘 먹어야 할 병에 그러지도 못해 사람 얼굴이 아닐 정도가 됐다. 대전 어머니까지 상경해 간호를 하느라 집도 역촌동으로 옮겼다. 병원비를 댈 수가 없어 아픈 몸에 손수 책 외판원에 나서야 했다. 극단은 2년의 투병 기간동안 쉬었지만, 외판원으로 매상을 꽤 올려 복귀 직전엔 영업부장까지 맡았다.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 직접 엉덩이에 주사도 놓고, 모친은 약탕원에서 몸에 좋다는 것들을 고아다 먹였다. 훗날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을 연기했을 때 말년에 폐결핵에 걸리는 장면에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었다고 한다.

그리곤 묘청 역을 맡은 '자1112년'에서 만난 대학 후배와 1983년에 결혼했다. 폐결핵을 앓아 힘든 그를 간호까지 해가며 2년 열애 끝에 결국 결혼했다. 처가의 반대가 심했고 워낙 가진 것이 없어 자취방에 비닐 장롱 하나 놓고 신접 살림을 시작했다. 그 해에 드디어 아들을 얻는다. 그가 말하길 처가 어른들이 월남하신 분들이었는데 마음을 풀지 않으셔서, 나중에 애를 안고 찾아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1983년 가정 생활로 건강을 조금씩 되찾으면서 연극 한만선(韓滿線)으로 복귀했고, 1985년 MBC 베스트 극장 <초록빛 모자>에 서갑숙과 부부 역을 맡아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인기를 얻고 나서도 서갑숙을 그의 진짜 부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1986년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연극판은 떠난다.

그러다 1988년 MBC 주말 드라마 내일 잊으리에서 야망에 불타는 애인에게 배신당한 김희애를 묵묵하게 지켜주는 따뜻한 이미지로 대히트를 쳤다. 준수한 외모와 신사적인 이미지에 노래 실력까지 겸비해서 1989년에는 앨범 카멜레온을 발표, 하루 12개의 행사에 출연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가수 김종찬과 더불어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9월엔 MBC 수목 미니시리즈 당신의 축배에서 최진실과 로맨스 연기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그 뒤로 후속작이 터지질 않아 약 8년 가까이 침체기를 겪었다.

결국 1994년 브라운관을 떠나 연극판으로 돌아온다. 은사 오태석이 쓴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모노 드라마였다. 온전히 그의 연기력으로만 1인극을 끌고가는 거였는데, 극단 목화가 대학로 흥사단 빌딩 지하에 상설 극장을 마련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상설 극장 이름은 <충돌극장2>라는 이름이었다. 1997년에 폐관했다.

돈과 인기도 생기고 경제적 사정도 나아졌지만,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었다. 1996년에 부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 곧 이혼했고, 이듬해 3살 연상의 디자이너 최경숙과 재혼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이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는다.

침체기에 있던 그를 다시 끄집어낸 작품이 바로 IMF 외환위기 사태로 국민 모두가 힘들었던 1998년 초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한 이후였다. 순풍산부인과 미달이 아빠 박영규 역할을 맡은 뒤로는 얍삽하고 이기적이며 민폐를 잘 끼치면서도 밉지 않은 개그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성공했으며. 특히 침대에 누워 이불킥하는 연기와 눈썹을 움직이면서 우는 연기가 일품이면서 IMF 외환위기로 매우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었던 명작이었기 때문에 메인 주인공인 박영규는 자신은 영원히 미달이 아빠라며 현재까지도 해당 작품에 애착이 매우 강할 정도이다. 훗날 2010년대 후반 이후에 과거 순풍산부인과 원본 방송자료가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후 배우 박영규는 순풍을 모르는 어린 세대한테도 미달이 아빠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순풍산부인과에 한창 출연 중이던 1999년 가을에는 MBC 드라마 국희에서 친구 민영재를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암살까지 시키는 등의 온갖 악행들을 벌이는 악역 송주태를 맡았는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 9시 15분에는 SBS에서 코믹한 사고뭉치 사위로 나오는 걸 본 뒤 바로 9시 55분에 MBC로 채널을 돌리면 사악하고 냉혈한 악역으로 변신하는 박영규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국희가 종영하고 드라마 신 귀공자가 방영하는 동안,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에도 바로 9시 55분에 MBC로 채널을 돌리면 진지하고 엄한 키다리아저씨 이미지의 선역으로 변신하는 박영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순풍산부인과에서의 코믹한 모습만 알던 어린 시청자들이 국희에서의 악역과 신귀공자에서의 선역을 보고 박영규의 연기력에 감탄했다고도 한다. 다만 미달이 아빠의 코믹스러운 이미지가 워낙 히트를 쳤다.

사실 그 동안 이미지 전환을 여러 번 시도했었다. 1995년 작인 옥이 이모에서도 개그 연기를 했었는데, 옥이 이모에게 잘보이려고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려다 영어 가사를 몰라, "징글벨 징글벨 징글징글벨~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벨"이라고(살짝 촐싹맞았다.) 부르는 코믹씬이었다. 물론 실제로 박영규는 원래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다. 팝송을 좋아해서 옛날 가요 방송에서 올드 팝송을 유창하게 부른 적도 있고 1989년 앨범에 팝송 마이웨이도 들어있다.

영화 역시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찌질한 주유소 사장을 시작으로 2002년 라이터를 켜라에서 찌질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역을 맡았다.

 


2001년, 두 번째 결혼도 끝이 났다. 암투병을 하던 아내가 '건강할 때도 아내 노릇을 제대로 못했는데 자신이 없다. 마음 편히 투병하고 싶다. 당신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이혼을 선언한 것이다.

아픔을 딛고 MBC, KBS, SBS 대작들에 여럿 출연하면서 아랑곳 않고 연기에 몰두했다. 2000년작 신 귀공자에서 재벌집 막내 삼촌 역을 맡아 여주인공 최지우를 뒤에서 돕는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로 대호평을 받았다. 여담으로 미달이 아빠 이미지로 KBS 시트콤 잘난 걸 어떡해와 똑바로 살아라 같은 시트콤에 연이어 출연하기도 했지만 두 작품은 시청률 저하로 인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일부 매니아층을 중심으로만 간간히 알려진 작품에 그쳤기 때문에 딱히 캐릭터성이 부각되지 못하여 미달이 아빠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8년 순풍산부인과 이후 또다른 압권은 드라마 '다모'의 좌포청 포도대장 조세욱 역을 맡아 역모로 걸린 친구를 두고 고뇌하는 씬이었다. 당시 다모 폐인들에게 압권이었다 평가받았다. 그의 노래대로 카멜레온 같은 변이 성공을 거듭했다.

그런데 2004년 3월, 미국에서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다가 메릴랜드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박영규는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들 사고 이전에 계약했던 해신은 마무리하고 떠났다. 설평 역으로 작품에서의 주인공 최수종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써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프로페셔널했다.

그리고는 방송 스케줄을 모두 정리해 캐나다로 훌쩍 떠났기에 2009년까지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 2004년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만난 김수륜과 이듬해 세번째 결혼을 한 뒤로도 한동안 캐나다에 있었다.

2009년 후반부터 복귀를 모색했다. 가발업체 밀란과 계약해 광고 모델로 컴백한 그는 영화에서 그에게 성공을 안겨줬던 <주유소 습격 사건>의 후속작을 두고 제작비를 직접 대는 등 의욕적이었다.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 이광기가 아들을 신종플루로 7살 나이에 하늘로 보내면서 그것을 보고는 동병상련의 아픔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2010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2로 5년만에 복귀하면서 그해 연초에 무릎팍도사에도 영화 홍보차 출연했다. 당시 강호동에게 코믹하게 안긴뒤 제비부터 쪼잔한 미달이 아빠까지 연기계의 카멜레온이라는 강호동의 소개로 화려하게 등장했고, 유세윤이 극중 박영규의 장인어른인 오지명을 성대모사하자 방영 당시와 하나도 변함없이 장인어른 왜그러세요 진짜!의 유행어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토크 도중 과거 자식의 교통사고 때의 아픔에 대해 말할 때 오열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으며 속죄하는 심정 뿐이었다고 한다. 미달이 아빠로만 기억하던 시청자들을 가슴 먹먹하게 했다.

2010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당시 순풍산부인과에서 극중 박영규의 딸인 박미달 역의 배우 김성은과 오랜만에 재회하기도 했으며 몰라 보게 달라진 극중 딸 모습에 반가워하며 포옹을 했고, 순풍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3년엔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 출연했다가, 갑자기 드라마에서 사라져 버렸다. 해당 드라마의 작가인 임성한의 횡포에 의해 전격 하차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2014년 KBS 1TV 사극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할을 맡았다. 당시 정현민 작가는 박영규의 코믹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반대했다. 그러나 베테랑 강병택 PD는 박영규의 사극 연기를 알고 있었고 작가에게 여러 작품을 보여줬다. 이인임은 입체적인 악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인 악역인 데다 명연기까지 더해지니, 드라마 초반부를 책임졌다. 드라마 제목이 <승암 이인임>이 아니냐란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2014 KBS 연기대상에서 장편 드라마 부문 남자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날 수상 소감에서 수상의 기쁨, 먼저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밝혔으며, 하늘에 있는 아들이 듣기 바란다며 오페라 축배의 노래를 한 소절를 부른 후, 자신처럼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드라마 못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기사.

2017년 12월에 김병욱 감독이 CP로 오랜만에 선보인 너의 등짝에 스매싱이라는 시트콤에 캐스팅 되었으며 당시 배우 박영규가 제작 기자회견에서 밝히길 본인은 1998년 순풍산부인과 이후 햇수로 20년 만에 김병욱 감독 작품에 다시 출연한다며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또 사람들이 자신을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순풍때는 장인 오지명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했지만 이번에는 사돈살이를 한다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의 등짝에 스매싱은 시청률 저하로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에 순풍산부인과 이후 김병욱 감독과 오랜만에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서 한량 아빠 역을 맡았으며, 이듬해 1월 15일 개봉작 해치지않아(영화)에서 동물원 원장 역을 맡았다.

2019년 12월 25일, 네 번째 결혼이 <더팩트>지 단독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세 번째 이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지인 30명 정도 초대한 극비리에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상대는 미모의 일반인 여성으로만 보도됐다. 장소는 역삼동 라움아트센터라고 한다. 지인들만 초대된 스몰웨딩이었다고 한다. 그 나이대의 일반적인 남성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 덕인지 상대 여성은 25살 연하라고 한다.

다소 쪼잔한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로 유명세를 치른 탓에 소인배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대인배적인 인품을 가졌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임성한 작가의 일방적인 통보로 하차당하면서 큰 실망과 황당함을 겪고 좌절감을 맛봤지만,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면서 다음 기회를 겸허히 기다리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박영규 인터뷰.

비록 오로라 공주에서는 하차당했지만, 2014년 KBS1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극의 키 포인트인 이인임 역을 제의받으면서 보다 더 탄탄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으니 배우 본인에게는 전화위복인 셈. 팬들은 이번 캐스팅을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면서 같이 축하해주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정도전이 각성하기 이전, 초반 전개를 하드캐리하면서 극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사실 다모나 해신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사극에서의 정극 연기는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순풍산부인과 출연 전에는 멜로 연기로 유명했으며 김희애와 연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코믹한 연기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정극 연기를 그동안 보지 못했던 팬들이 크게 아쉬워 했었는대 그런 팬들의 갈망을 제대로 풀어주었다. 박영규 본인도 꿈속에서라도 한번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라고 기뻐했다. 인터뷰

2015년 작가 정현민과 다시 만난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한복을 입고 나와 이인임의 연장선 같았지만, 중후한 분위기의 무거운 연기를 잘 소화했다. 삼총사, 몬스터, 김과장, 다시 만난 세계 등 진중한 분위기의 높으신 분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고 있다.

의외로 애드립을 기피하고 철저하게 대본에 충실한 타입이며 배우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아빠를 연기할 때의 찰진 개그 대사들은 마치 애드립처럼 보여서 애드립이 많은 배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전부 대본에 쓰여 있던 것이며 그저 애드립처럼 보일 정도로 맛을 살려서 연기하는 것이다.

코미디 연기로 유명한 사람답게 개그맨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박영규의 성대모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후배 정보석은 그를 시트콤에 있어서는 신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1998년 순풍 산부인과와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온 모습 등으로 코믹한 연기의 대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것은 바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말종기믹의 연기이다.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 국희에 나온 친일파이자 최종보스 송주태, 덕이에 나온 한량 정한구 어셈블리의 박춘섭이나 위에 시트콤과 코미디 영화로 언급한 순풍산부인과/주유소 습격사건 등의 박영규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라는 평가를 모두 받은 명연기였다. 이성재와 더불어 저게 연기인건 알겠지만, 정말 소름돋는다. 유형의 배우이다.

 

 

2019년 12월 25일, 네 번째 결혼이 <더팩트>지 단독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세 번째 이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지인 30명 정도 초대한 극비리에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상대는 미모의 일반인 여성으로만 보도됐다. 장소는 역삼동 라움아트센터라고 한다. 지인들만 초대된 스몰웨딩이었다고 한다. 그 나이대의 일반적인 남성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 덕인지 상대 여성은 25살 연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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