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 인터 마이애미 CF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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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쿠치티니
Lionel Andrés Messi Cuccittini
출생
1987년 6월 24일 (36세)
산타페 주 로사리오
국적
아르헨티나 국기
 아르헨티나|
스페인 국기
 스페인|
이탈리아 국기
 이탈리아
신체
키 170cm / 체중 67kg
포지션
공격수
주발
왼발
등번호
아르헨티나 대표팀
10
인터 마이애미 CF
소속
유스
CA 그란돌리 (1992~1995)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5~2000)
FC 바르셀로나 (2000~2003)
선수
FC 바르셀로나 C (2003~2004)
FC 바르셀로나 B (2004~2006)
→ FC 바르셀로나 (2004~2006 / 콜업)
FC 바르셀로나 (2006~2021)
파리 생제르맹 FC (2021~2023)
인터 마이애미 CF (2023~ )
국가대표
180경기 106골 (아르헨티나 / 2005~ )
통산 득점
826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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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역대 등번호
아르헨티나 대표팀 - 10번, 18번, 19번
FC 바르셀로나 - 10번, 19번, 30번
파리 생제르맹 FC - 30번, 10번
인터 마이애미 CF - 10번
가족
친할아버지 유세비오 메시
친할머니 로사 마리아 페레스
외할아버지 안토니오 쿠치티니(2018년 2월 21일 사망)
외할머니 셀리아 올리베이라 쿠치티니(1998년 사망)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1958년 생)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 메시
큰형 로드리고 메시(1980년 2월 10일 생)
작은형 마티아스 메시
여동생 마리아 솔 메시
배우자 안토넬라 로쿠소(1988년 2월 26일 생)
장남 티아고 메시(2012년 11월 2일 생)
차남 마테오 메시(2015년 9월 11일 생)
삼남 치로 메시(2018년 3월 10일 생)
종교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후원사
아디다스(X Crazyfast Ballon d'Or.1)
앰버서더
유니세프 (2010~ )
버드와이저 (2020~ )
에이전트
호르헤 메시

 

 

아르헨티나 국적의 인터 마이애미 CF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수. 현재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축구 역사상 최다 공격 포인트, FIFA 공식 역대 득점 2위, 최다 도움 및 최다 우승 기록자이자,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유러피언 골든슈 최다 수상자이며 FC 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또한, FIFA 월드컵, 대륙컵, 올림픽 축구, UCL, 유럽 최상위 2개 리그를 우승하고, 2회의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월드컵 골든볼, 대륙컵 MVP, 리그 MVP,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수상한 선수다.

1987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후손이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에서 리오넬 메시 역시 혈통적으로 주로 이탈리아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이었던 고조할아버지 안젤로 메시(1866년생)가 189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집안이 아르헨티나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는 철강 노동자였다.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도 이탈리아계 후손이며 파트타임 청소부로 일했다. 아버지가 지역의 클럽인 글란돌리의 코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와 가까워졌고 글란돌리의 클럽에 가입해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네 살 때라고 한다. 처음으로 축구 경기에 뛰어본 것은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지역 유소년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우연히 결원인원이 발생하게 되자 이 할머니가 감독에게 대타로 자신의 손자를 써보라고 강권했고 그렇게 투입된 경기에서 메시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95년 로사리오를 연고로 하는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에 6살에 입단하였고, 곧 유망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11살 때 성장 호르몬 결핍증(GHD)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며 시련을 겪는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매달 90~100달러의 돈이 필요했고, 육체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부모가 감당하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소속팀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도 이 금액을 지출하기는 꺼렸다. 일단은 부모가 빚을 내서라도 장애를 치료하고 그가 축구 선수가 될 수 있게 지원하려 했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었다.

2000년 7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FC 바르셀로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였다. 앞서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 CA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그를 초청해 입단 테스트를 치른 바 있었다. 테스트를 진행한 리버 플레이트의 코치는 메시를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로 구단에 보고했고, 입단 테스트를 함께 지켜본 기자는 그를 '새로운 마라도나'로 칭할 정도로 재능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설득해야 한다는 점, 숙식 외에 치료 비용이 고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끝내 확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메시와 아버지는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해 바르셀로나로 건너갔다. 바르셀로나 측과 리오넬 메시의 아버지 사이에서 몇 차례 협상이 오간 끝에 메시의 치료비를 모두 부담해 주겠다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덧붙었다.

당시 리오넬 메시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온 카를레스 렉사흐(Carles Rexach)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는 메시의 플레이를 보자마자 매료되어 계약 의사를 타진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13세의 외국 유소년 선수와 계약해 본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메시 측에 계약과 관련한 확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 달이 흐르자 참다 못한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 라며 최후통첩을 보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렉사흐가 냅킨에다가 즉석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계약서이다.

2007-08 시즌, 만 20세의 나이에 2007 발롱도르 3위, 2007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에 들만큼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고 불과 2년 뒤 09-10 시즌에는 만 22세의 나이로 2009 발롱도르와 2009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메시는 이때부터 22-23 시즌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상에서 군림, 총 8번의 발롱도르와 8번의 FIFA 올해의 선수상, 2번의 라우레우스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들어올리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역대 최다 우승, 역대 최다 개인수상, 메이저 국가대표 대회 최다 MVP, 트레블 2회, 유럽 5대 리그 최다 MVP, 유럽리그 클럽 통산 최다골/최다도움, 역대 최다 MOM 선정,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4년 연속 득점왕,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득점왕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MOM, 역대 최다 공격 포인트, 21세기 단일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 단일 시즌 최다 골, 한 해 역대 최다 골, 라리가 통산 최다골/최다도움, 단일 클럽 최다골, 월드컵 통산 최다 MVP, 월드컵 통산 최다 MOM, 월드컵 토너먼트 전경기 연속 MOM, 월드컵 토너먼트 전경기 연속 득점, 월드컵 통산 최다 공격 포인트,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MVP,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MOM,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공격 포인트 등의 기록에 이어 드리블 성공률, 찬스 메이킹 횟수, 평점 및 기타 세부 지표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의 위상을 증명한다. 이런 수많은 기록과 실적을 바탕으로 축구 매체들이 선정하는 역대 선수 랭킹에서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와 더불어 TOP 3에 거의 고정적으로 포함되어 왔으며, 월드컵 우승이라는 퍼즐까지 맞춘 이후로는 대부분의 매체에서 GOAT로 평가받고 있다.

데뷔 직후부터 2008-09 시즌까지 파괴적인 드리블과 준수한 득점력을 지닌 윙어였으며, 2008-09 시즌 펩 과르디올라의 지도 하에 득점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에 정점을 찍었다. 사비 에르난데스가 주전에서 물러난 2014-15 시즌부터는 팀의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경기를 조율하고 찬스를 만드는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량이 만개하였다. 실제로 메시는 축구 역사상 최다 어시스트(도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IFFHS가 수여하는 올해의 플레이메이커상을 5회나 수상하였는데 이는 사비의 4회 수상을 뛰어넘은 역대 최다 기록이다. 또 2010년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상까지 받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리킥과 같은 무기도 역시 발전시켜 완성형 공격수로 거듭날 수 있었는데, 메시는 본인의 커리어에서 다소 늦은 시기인 2014-15 시즌부터 프리킥 전담키커가 되었음에도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자 부문에서 65골로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공동 5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8-09 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뒤를 이어 부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 시즌의 부진과 해이해진 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팀 전체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기존 팀의 주축이었던 호나우지뉴와 데쿠를 내보내고 이미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하던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미드필더 라인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했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져, 이 시즌 바르셀로나는 라리가,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트레블을 기록했고 더 나아가 2009년에 축구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물론 메시 개인으로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데, 이 시즌 챔피언스 리그 12경기 9골로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라리가에선 31경기 23골 11도움을 기록하였다.

커리어 전체에서 최고의 시즌으로 평가받으며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2010-11 시즌에는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제일 먼저 거론되는 2010-11 시즌 FC 바르셀로나를 이끌며 축구 역사상 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시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0년 초반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완성시킨 티키타카 전술로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미드필더진 차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의 패싱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이러한 전략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유율 축구에서도 강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의 개인 기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수많은 팀이 2010년 초중반의 바르셀로나를 따라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리오넬 메시라는 독보적인 존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1-12 시즌에는 무려 73골 29어시스트라는 경악스러운 스탯을 기록하여 유럽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공격 포인트 100개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2012년 5월 6일, 라리가 37라운드 에스파뇰전에서 4골을 터뜨리며 라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5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게르트 뮐러가 세운 한해 최다 골 기록인 85골을 뛰어넘어 2012년 한 해 동안 무려 91골을 터트리며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2014년 조국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을 수상하였음에도 메시의 이름값에 걸맞는 국가대표 활약상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2021년 남미 최대의 국제 대회인 CONMEBOL 코파 아메리카에서 34세의 나이에 축구 역사상 최초로 국대 메이저 대회 득점왕, 도움왕, MVP를 싹쓸이 하고 조국을 우승시키면서 이런 평가는 없어졌다.

2014-15 시즌에는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와 MSN이라는 역사에 남을 트리오를 이루고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여 2008-09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트레블을 달성했고, 한 팀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과 도움왕, 라리가 도움왕을 차지하였고, 2014-15 시즌 57경기 58골 2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해 메시는 라리가 최우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상들을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15년 본인의 5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17-18 시즌과 2018-19 시즌에는 네이마르의 빈자리까지 메꾸며 2년 연속 라리가 우승, 라리가 득점왕, 라리가 MVP를 달성하며 라리가에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메시가 팀에 끼치는 영향력이 가장 막대했던 시즌이자, 그만큼 팀이 메시에게 많이 의존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 메시와 팀은 계속되는 챔피언스 리그 부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 팀을 상징하는 선수이자 에이스인 위치에서 클럽의 챔피언스 리그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메시라는 한명의 선수에게만 이러한 책임을 과도하게 돌리는 것은 부당한 평가이다. 2016-17 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는 주전들의 노쇠화로 인한 팀 기동력 하락, 중원 장악력 하락, 수비 불안 등의 문제로 선수단과 구단의 이름값에 비해서 실제 전력은 크게 약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메시는 거의 매경기를 캐리하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 골든슈, 발롱도르 등 수많은 개인상을 휩쓸 만큼의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것.

2020-21 시즌에는 앙투안 그리즈만, 프렝키 더용 등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이전보다 메시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많이 줄어든 상태지만,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서 메시가 차지하는 지분은 엄청났다. 그리고 메시가 바르셀로나의 재정적인 문제로 2020-21 시즌이 끝나고 fa로 이적하자마자 바르셀로나는 챔스 16강은 커녕 2년 연속 유로파리그에 머물고 말았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의 모든 문제점을 가려주고 있었다는 쿠만의 인터뷰가 사실임이 드러나는 부분.

현재 삼십대 중반이 된 나이에도 경기 내 영향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득점, 전반적인 플레이메이킹 등 많은 역할을 담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기량을 계속해서 유지한 덕분에 34세의 나이에 오랜 한이었던 국가대표 우승과 8번째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클럽, 국가대표, 개인 수상을 통틀어 이룰 수 있는 거의 전부의 업적을 달성한 메시에게 조국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만이 유일하게 남은 과제였으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며 마침내 조국의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평가마저 받게 되었다.

스포츠 내외적으로도 잡음이 많지 않은 선수인데다가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 탓에 나이를 먹고서는 팀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런 단점도 조금씩 개선되며 2022년 월드컵에서는 동료선수들이 '메시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그에게 월드컵을 안겨주기 위해 뛰겠다'고 선언할만큼 강한 리더십을 선보이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메시는 전무후무할 8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되었다.

2023년 여름, 파리 생제르맹 생활을 마무리하고 축구 불모지인 미국의 메이저 리그 사커 소속 인터 마이애미 CF로 이적하며 커리어를 마무리 짓는 듯 했으나 매 경기 경악스러운 활약으로 다 죽어가던 리그 꼴찌팀을 살려놓는 것을 넘어 북중미 클럽대항전인 리그스 컵에서 우승시키며 북중미 최강의 팀 중 하나로 재건하고 있다. 훈련 첫날 가장 먼저 출근해 연습하고 있는 메시를 본 팀 동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전부 메시가 도착하는 아침 7시에 자발적으로 나와 연습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마이애미에서의 엄청난 개인 활약과 미국 전역에 축구 붐을 일으켰다는 엄청난 영향력으로 타임지가 선정하는 타임 올해의 운동선수에 축구 선수 최초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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