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 (科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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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의 발족일을 기념하여 1968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였고, 1973년 3월 30일 제정, 공포된 「각종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확정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대한민국의 과학의 날은 1933년 김용관이 찰스 다윈의 사망 51주기를 기념하여 4월 19일을 ‘과학 데이’로 정한 것이 최초였다. 현재 과학의 날은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가 중앙 행정기관으로 독립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8년 제정하였다. 매년 4월 21일에 각종 학교 및 관련 단체에서 물로켓, 에어로켓, 과학글짓기, 과학그리기, 과학상자, 로봇 만들기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한다.

과학의 날에는 사회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과학의 대중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매년 4월 21일 거행되는 과학의 날 기념식에는 과학기술진흥에 힘써온 과학기술계 유공자들을 표창 또는 수상하며, ‘과학의 날’ 을 전후한 시기 과학의 진흥과 대중화를 위한 여러 행사들을 전개한다.

원래 한국 최초의 과학의 날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4월 19일로, 과학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당시 과학대중화운동단체였던 '발명학회'가 과학기술 지식의 보급과 계몽, 미신타파, 문맹퇴치 등 생활의 과학화를 위해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여기던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죽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 1934년 다윈의 기일(忌日)이었던 4월 19일을 기념하여 '과학 데이'를 정하고 과학기술보급 행사를 개최했다. 1938년까지 5번에 걸쳐 행해졌으며 김용관 등의 과학기술자들을 주축으로 해서 여운형·주요한·이인 등 각계의 민족지도급인사들이 참여하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언론이 지원하여 범민족적이고 대규모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이 행사의 지도자인 김용관(金容瓘)이 투옥됨으로써 더 이상 행사를 계속하지 못하다가,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족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정했다.

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구 과학기술부와 구 정보통신부의 업무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의 날 행사는 정보통신의 날(舊 체신의 날) 행사와 같이 치르고 있다.

과학의 날 기념식은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부처이지만, 실제 행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한다. 그 외에 과학관, 과학창의재단, 각급 학교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전국적으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행사를 개최한다.

과학의 날의 유래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한국인 과학기술자와 민족주의 인사들이 ‘과학데이’를 정하고 민족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대중적 행사를 벌였다. 당시 발명학회(發明學會) 전무 김용관(金容瓘)의 제창으로 해마다 다윈(Charles R. Darwin)이 죽은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한 강연회, 활동사진 상영회, 대중 거리행렬, 과학관 · 박물관 · 공장 견학 등의 행사를 열었다.

이러한 민족적 움직임은 해방 직후 계승되지 못하다가, 1960년대 산업개발을 위해 과학기술에 적극 투자하기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 정부에 의해 국가 기념일의 형태로 재현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한국과학원(KAIS)을 설치하여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을 진흥했고, 정부 부처로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여 국가 과학기술 진흥사업을 총괄하게 하였다.

이와 더불어,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하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제고하기 위한 사업도 기획했는데, 과학의 날 제정이 대표적 사례이다. 제1회 과학의 날 행사는 1968년 4월 21일 서울시민회관에서 개최되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기념식이 중단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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